[책리뷰] 상실과 신앙, 그리고 어머니의 고백 – 박완서 산문 “한 말씀만 하소서”

2025. 4. 12. 22:28카테고리 없음

“이건 소설도, 수필도 아닌, 일기입니다.”
박완서 작가가 직접 덧붙인 이 말처럼, 『한 말씀만 하소서』는 장르를 초월한 한 인간의 절절한 고백이자, 슬픔의 기록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상실, 그 후의 시간들


이 책은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기록이다. 작가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아들을 그리워하며, 또 그 죽음을 감당하려 애쓰며 펜을 든다. 하지만 그 펜끝에서 나오는 것은 문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말이 되지 못한 감정의 단편들,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삼킨 울음이다.

‘위로를 받을 수도, 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써내려간 글’이라는 고백처럼, 이 책은 우리에게 슬픔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슬픔 속에서도 살아내야 하는 인간의 버거운 고통과 그 생생한 체온을 전할 뿐이다.

믿음과 슬픔의 충돌


신앙인이기도 했던 박완서는, 이 책을 통해 믿음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상실의 깊이를 마주한다. 신에게 ‘한 말씀만 하소서’라며 애원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오히려 침묵뿐. 믿음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그 마음의 벼랑 끝에서, 작가는 하느님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묻는다. 왜 나여야 했는가. 왜 이 아이여야 했는가.

독자에게 건네는 조용한 동행


책을 덮고 나면, 위로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려는 글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말이 아니라, 그냥 함께 있어주는 것으로 충분해”라고 말하는 듯하다.

『한 말씀만 하소서』는 아픔을 겪은 사람이라면 더욱 깊게 다가올 책이다. 동시에, 그런 아픔을 겪지 않았더라도 타인의 고통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책이다.

슬픔을 당한 사람에 대한 위로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고
신앙인으로써 고통을 준 신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과 물음 속에서 신은 침묵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침묵 속에서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사랑...

20주년 특별 개정판이 나와서 읽게 된 것이 행운이었으며 지금도 도처에 고통과 상실 속에 허덕이는 자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신앙인으로서도 많은 깨달음을 주는 책이었다.